안동 여행 (예끼마을, 월영교, 낙강물길공원)

 

안동여행

안동을 처음 계획할 때 하회마을과 도산서원만 보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제가 놓칠 뻔했던 곳들이 진짜 기억에 남더군요. 예끼마을, 월영교, 낙강물길공원. 이 세 곳을 중심으로 어떻게 돌아야 후회가 없는지, 직접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예끼마을 — 쇠락한 마을이 예술로 살아난 이야기

예끼마을은 겉으로 보면 그냥 작은 벽화 골목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역사를 알고 나서 걷는 골목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마을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水沒)된 예안마을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입니다. 수몰이란 댐이나 저수지 공사로 인해 마을이나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안마을은 안동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했던 곳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물속으로 가라앉고 주민들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서 마을은 조용히 쇠락해갔습니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습니다. 유명 아트디렉터(Art Director) 한젬마와의 인연으로 '도산 서부리 예술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아트디렉터란 시각적 콘텐츠의 전반적인 방향과 스타일을 기획·지휘하는 전문가를 뜻합니다. 이 사업을 통해 마을 담장에 그림이 그려지고, 낡은 간판들이 개성 있게 교체되었습니다. 과거 관아 건물이었던 선성현(宣城縣)은 한옥 갤러리 근민당으로, 마을회관은 작가들의 화실로, 우체국은 공방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제가 직접 골목을 걸어보니, 단순한 벽화 마을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조형물 하나하나에 맥락이 있고, 간판 글씨체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보였습니다. 트릭아트(Trick Art)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고, 한옥 숙소에서 하룻밤 묵는 체험도 가능합니다. 트릭아트란 원근법이나 착시를 이용해 2D 그림이 3D처럼 보이게 하는 시각 예술 기법입니다. 골목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간판 하나, 조형물 하나 찬찬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마을의 내력을 알고 걸으면 벽의 그림 한 장도 다르게 보입니다.

마을 이름 '예끼'는 '예술에 끼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 하나도 허투루 짓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월영교 — 야경을 보지 않으면 절반밖에 못 본 것입니다

월영교(月映橋)는 안동호반에 자리한 국내 최장 목조 인도교입니다. 목조 인도교란 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보행 전용 다리를 뜻합니다. 길이 387m, 폭 3.6m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출처: 한국관광공사)에 이름을 올린 명소입니다.

제가 처음 월영교를 방문한 건 낮이었는데, 솔직히 그때는 '그냥 긴 나무다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나서 다시 나왔을 때 완전히 달랐습니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다리 구조를 따라 켜지고, 그 빛이 안동호 수면에 고스란히 반사되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리 중앙에는 월정루(月映樓)라는 정자가 있어서 안동호 전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야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분위기입니다. 낭만적이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서 있으면 그 말이 딱 맞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월영교에는 다리 이름에 얽힌 사연도 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짚신의 일종)를 짜 넣은 아내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고, 다리 형태 자체도 미투리 모양을 본떠 설계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 다리를 걸으면 발아래 나무판자 하나가 왠지 달리 느껴집니다.

월영교 인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낙동강 음악 분수: 일정 시간에 맞춰 가동되며 낮과 밤의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무지개빛 물줄기가 시원하게 올라오는 장면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2. 문보트(Moon Boat): 달 모양의 배를 타고 안동호 위에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문보트의 모습 자체도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입니다.
  3. 월정루 전망 포인트: 다리 중간 정자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은 어느 방향으로 찍어도 그냥 사진이 됩니다. 조명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야경 방문을 계획한다면 해 질 무렵에 도착해 낮과 밤 두 가지 분위기를 모두 경험하는 것을 권합니다. 낮에 한 번 걷고, 조명이 켜진 후 다시 한 번 걷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낙강물길공원 — 이국적인 풍경이 안동 도심에 숨어 있습니다

낙강물길공원은 구 안동폭포공원 자리에 조성된 공원으로,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 좌측에 위치합니다. 도심에서 멀지 않아 접근성이 좋고, 산책 코스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놀란 건 분위기였습니다. 작은 연못을 끼고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와 전나무가 쭉쭉 뻗어 있고, 연못 위에는 돌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란 낙우송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수직으로 높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가로수나 공원 조경수로 자주 활용되는 수종입니다. 그 아래 오솔길을 걷다 보면 한국인지 유럽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옵니다. SNS에서 '안동의 지베르니'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를 직접 와서야 이해했습니다. 지베르니(Giverny)란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정원을 가꾸고 수련 연작을 그렸던 마을로, 아름다운 수변 풍경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벤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좋습니다.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인데도 이곳에서는 무심코 셔터를 눌렀더니 나름대로 괜찮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연못 위 돌다리 앞이 특히 인기 있는 촬영 포인트입니다.

공원에서 이어지는 산책로는 안동댐까지 연결되고, 수변데크(水邊Deck)를 따라 걸으면 월영공원까지 닿습니다. 수변데크란 수면 가까이에 설치된 목재 또는 합성목재 보행로를 의미합니다. 월영교와 낙강물길공원을 묶어서 동선을 짜면 하루 코스로 충분합니다. 안동 도심에서 이 정도 자연 환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관광 공식 안내(출처: 경상북도 문화관광)에서도 낙강물길공원 일대 수변 산책 코스를 추천 코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면서 유명한 곳만 줄 세워 방문하는 방식이 정말 맞는 건지 이번에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예끼마을처럼 역사를 알아야 더 잘 보이는 곳, 월영교처럼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 낙강물길공원처럼 기대 없이 갔다가 오래 머무르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안동을 처음 가신다면 이 세 곳을 한 동선으로 묶어보시길 권합니다. 걷다 보면 안동이 단순한 유교 문화 도시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knoaG2p48Y&t=2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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