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여행 (네덜란드광장, 세인트폴교회, 산티아고요새)


말라카여행

유럽 식민지 역사를 보러 굳이 유럽까지 가야 할까요? 말레이시아 서해안에 자리한 말라카(Melaka)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지배하며 남긴 400년치 흔적이 한 도시에 압축된 곳입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된 이 도시를 직접 걸어보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밀도 높은 여행지였습니다.

네덜란드광장: 유럽 감성이 동남아에 착륙한 현장

일반적으로 네덜란드광장은 "사진 찍기 좋은 포토스폿"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가보니 그것만으로는 반도 표현이 안 됩니다. 광장 전체가 살아있는 건축 교과서였습니다.

광장을 둘러싼 붉은 건물들은 식민지 건축 양식(Colonial Architecture)의 전형입니다. 식민지 건축 양식이란 유럽 열강이 점령지에 자국 건축 문법을 이식한 형태로, 현지 기후와 재료를 반영하면서도 본국의 미학을 고집한 것이 특징입니다. 스테이스(Stadthuys)는 그 대표 사례로, 1650년대에 지어진 아시아 최고(最古)의 네덜란드 건축물입니다. 지금은 역사 민족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는 1753년 완공된 개신교 교회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붉은 외벽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동남아 한복판에서 유럽 소도시에 온 것 같은 이질감이 꽤나 강렬했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 분수와 'I LOVE MELAKA' 조형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트라이쇼(Trishaw, 자전거 인력거)가 광장을 돌아다니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두 번 가야 제값을 하는 곳입니다.

세인트폴교회: 언덕을 오르면 역사가 펼쳐집니다

세인트폴교회(St. Paul's Church)에 대해 많은 여행 후기가 "언덕이 힘들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경사가 있긴 하지만 10분 남짓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고,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말라카 구시가지 풍경 자체가 이미 볼거리입니다.

교회의 정식 명칭 변천사를 보면 말라카의 역사가 그대로 보입니다. 1521년 포르투갈 귀족 두아르테 코엘료(Duarte Coelho)가 남중국해 폭풍에서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수태고지 교회'로 세웠고, 이후 네덜란드 통치 시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건물은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지붕 없이 외벽과 기둥만 남아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포르투갈 귀족들의 묘비(Epitaph)가 벽에 박혀 있습니다. 에피타프란 무덤이나 건축물에 새긴 추도 문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라틴어로 새겨진 귀족들의 이름과 생몰 연도가 수백 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너무 멋있어서 한참을 서서 바라봤습니다.

교회 앞에는 동방 제국의 사도(Apostle of the East)로 불리는 선교사 성 프란시스코 자비에르(St. Francis Xavier)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의 시신이 약 8개월간 이곳에 안치되었다는 사실은 이 장소의 역사적 무게를 더합니다. 동상을 지나 시선을 돌리면 말라카 해협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전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의 공식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출처: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말라카는 "동서양의 무역, 종교, 문화가 교차한 살아있는 증거"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세인트폴교회는 그 증거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남아있는 유적입니다.

산티아고요새: 성문 하나에 담긴 패권의 무게

산티아고요새(A Famosa)는 원래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1511년 포르투갈군이 말라카를 점령한 직후 네덜란드군의 공격에 대비해 산 전체를 두르는 성채로 지었습니다. 성채(Fortress)란 방어를 목적으로 두꺼운 석벽과 탑으로 구성된 군사 시설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 가보면 그 거대한 요새에서 남은 것은 성문 하나와 대포 몇 문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군이 파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영국이 말라카를 점령한 이후 요새를 허물려는 계획을 세웠고, 역사가 래플스(Stamford Raffles)가 이를 저지하여 성문만 보존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성문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돌 위에 새겨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의 문장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VOC란 17세기 네덜란드가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설립한 국가 특허 상업 기업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민간 기업이었습니다.

말라카 여행 중 산티아고요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전쟁의 아픔보다 오히려 그 단단한 침묵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이 자리에 서서 지배자가 바뀌는 것을 지켜본 성문 하나가, 어떤 설명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공식 자료에 따르면(출처: Tourism Malaysia),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에 있어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충분하지만, 야경까지 보려면 1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권장은 정확합니다. 낮의 말라카와 밤의 말라카는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릅니다.

말라카를 제대로 느끼는 방법: 역사를 알고 걷는 것

말라카 여행이 "그냥 오래된 건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순서대로 이 땅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 과정을 알고 걸으면, 같은 거리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문화 융합(Cultural Syncretis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뜻합니다. 말라카는 그 교과서적 사례로, 중국 화교 문화와 포르투갈 후손들의 혼혈 문화인 크리스탕(Kristang) 문화, 말레이 토착 문화가 한 골목 안에서 공존합니다. 크리스탕 문화란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에 정착한 유럽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형성된 독특한 혼혈 문화를 말합니다.

유적지 내부를 걸을 때는 안내판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권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보니 영어와 말레이어로 된 설명이 꽤 충실하게 적혀 있었고, 그것만 읽어도 전체 맥락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말라카 여행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인 도시였습니다. 화려한 리조트나 자연경관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수백 년의 역사가 한 공간에 압축된 경험을 원한다면 말라카는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킵니다. 네덜란드광장에서 야경을 보고, 세인트폴교회에서 해협을 내려다보고, 산티아고요새의 성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말라카다운 여행이 됩니다. 쿠알라룸푸르 일정에 하루를 더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말라카를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8UWgzx0nWs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교토 여행 (기요미즈데라, 후시미이나리, 니조성)

하노이 여행 준비 (경비 준비, 시내 이동, 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