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여행 (바투동굴, 메르데카광장,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저는 바투 동굴을 그냥 '계단 많은 동굴'쯤으로 생각하고 갔습니다. 4억 년이라는 숫자를 들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올라가서 동굴 안에 서는 순간, 그 생각이 싹 바뀌었습니다. 쿠알라룸푸르 여행에서 바투 동굴, 메르데카 광장,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까지 직접 다녀온 경험을 풀어보겠습니다.
바투 동굴, 언제 어떻게 가야 후회가 없을까
바투 동굴(Batu Caves)은 약 4억 년 전 생성된 석회암(limestone) 지형이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 작용을 거쳐 만들어진 동굴입니다. 석회암이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퇴적암으로, 빗물과 지하수에 서서히 녹아 거대한 공동(空洞)을 형성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1878년 미국 탐험가 윌리엄 호너비가 처음 발견했고, 이후 힌두교 사원이 들어서며 세계 최대의 힌두교 성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방문 시간이었습니다. 오전 일찍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정이 꼬여서 한낮에 도착했고, 햇볕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상태에서 272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중간에 진심으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침 일찍, 가능하면 오전 9시 이전에 방문하시는 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272개라는 계단 수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힌두교 교리에서 인간이 일생 동안 짓는 죄의 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계단은 그 자체가 하나의 포토 스팟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올라가다 보면 사진보다 경사가 훨씬 가파르다는 걸 몸으로 느낍니다. 제 경험상 계단 초반부에는 원숭이가 거의 보이지 않고, 위로 올라갈수록 슬그머니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동굴 내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힌두 사원이 자리한 약 400m 길이의 '힌두 사원 동굴(Temple Cave)', 벽화가 가득한 '갤러리 동굴(Gallery Cave)', 그리고 박쥐가 서식하는 '다크 동굴(Dark Cave)'입니다. 다크 동굴은 박쥐 서식지 보호를 위해 별도의 유료 투어로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메인 동굴 입장은 무료이지만 일부 구역은 추가 요금이 발생하니 미리 현금을 챙겨두시는 게 좋습니다.
동굴 정상에 올라 천장의 뚫린 구멍으로 자연광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 올라오면서 흘린 땀이 전부 용서가 됩니다. 그 경건하고 신비로운 느낌은 사진으로는 절대 전달이 안 됩니다. 직접 보셔야 압니다.
- 방문 시간: 오전 9시 이전 도착 권장. 오후에는 직사광선과 더위로 체력 소모가 두 배
- 복장: 계단이 가파르므로 운동화 필수. 짧은 치마나 슬리퍼는 비추천
- 현금 준비: 일부 내부 구역 및 다크 동굴 유료 입장 시 필요
- 원숭이 주의: 음식이나 비닐봉지를 밖에 꺼내면 뺏길 수 있으므로 가방 안에 보관
메르데카 광장, 독립의 무게가 담긴 공간
메르데카(Merdeka)란 말레이어로 '독립'을 뜻합니다. 1957년 8월 31일, 이 광장에서 영국 국기 유니언잭(Union Jack)이 내려지고 말레이시아 국기 잘루르 그밀랑(Jalur Gemilang)이 처음 게양된 역사적인 순간이 연출되었습니다. 잘루르 그밀랑이란 말레이어로 '영광의 줄기'를 의미하며,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주권을 상징하는 국기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관광객이 줄어서 광장을 천천히 걸어볼 수 있었습니다. 광장 주변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말레이시아의 열대 식생과 유럽풍 건물이 묘하게 섞이는 그 분위기가 독특합니다.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나왔습니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두 강이 만나는 진흙 하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르데카 광장 근처를 흐르는 리버 오브 라이프(River of Life)가 바로 그 두 강의 합류 지점 근처로, 도시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도시 전체 도로 거리 계산의 기준점(원점)이 되는 장소가 이 광장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공식 자료에 따르면(출처: 말레이시아 관광청) 메르데카 광장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쿠알라룸푸르 대표 역사 명소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매년 8월 31일에는 독립기념일 퍼레이드(Independence Day Parade)가 열립니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란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군악대, 전통 공연, 불꽃놀이 등으로 구성되는 국가적 행사입니다. 이 날 방문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활기찬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메르데카 광장은 낮보다 밤에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낮에 봤음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랜드마크를 제대로 즐기는 법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는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 회사 페트로나스(Petronas)의 본사 건물로, 지상 88층 높이 452m를 자랑합니다. 1998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개의 타워를 각각 한국(삼성물산)과 일본(하자마 구미) 건설사가 맡아 시공했는데, 완공 속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타워 외관은 이슬람 건축의 기하학적 문양과 현대 초고층 건물 설계 기법인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을 결합한 형태입니다. 커튼월이란 건물 하중을 외벽이 아닌 내부 철골 구조가 지지하고, 외벽은 유리나 금속 패널로만 마감하는 현대 건축 방식을 말합니다. 이 공법 덕분에 타워 외관이 매끄럽고 반사되는 유리면이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납니다.
전망대는 41층의 스카이브리지(Sky Bridge)와 86층 관측 덱(Observation Deck) 두 곳을 운영합니다. 스카이브리지란 두 타워를 연결하는 공중 통로로, 지상 170m 높이에 위치합니다. 입장권은 현장 구매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하는 것이 대기 시간을 줄이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공식 사이트(출처: Petronas Twin Towers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장 시간과 요금 정보를 미리 확인하시길 권장드립니다.
낮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밤에는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타워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제 경험상 저녁 8시 이후에 KLCC 공원 분수대 앞에서 찍는 야경 사진이 가장 잘 나옵니다. 쿠알라룸푸르에 왔다면 이곳만큼은 절대 빠뜨리면 안 됩니다.
바투 동굴, 메르데카 광장,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이 세 곳만 제대로 봐도 쿠알라룸푸르가 어떤 도시인지 뼈대가 잡힙니다. 4억 년의 자연, 67년 전의 독립 선언, 그리고 현재의 경제 성장이 한 도시 안에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처음 쿠알라룸푸르를 계획하신다면 바투 동굴을 오전 일정으로 먼저 넣고, 메르데카 광장과 트윈 타워는 오후부터 야간으로 이어서 보시는 동선을 추천드립니다. 무리 없이 하루 안에 소화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3FDUd2CJ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