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황리단길, 동궁과월지, 박물관굿즈)
경주는 수학여행 이후로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고분이며 석탑이며, 어릴 때는 그냥 돌덩이로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경주는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황리단길부터 동궁과 월지 야경까지, 역사와 감성이 이렇게 잘 맞물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황리단길, 관광지와 일상이 붙어 있다는 것
황리단길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건 이미 몇 년 전 일이지만, 직접 걷고 나니 왜 아직도 사람들이 몰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위치입니다. 대릉원(大陵苑), 즉 신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집단으로 조성된 고분군 바로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왕릉을 보고 나와 바로 카페 테라스에 앉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게 생각보다 훨씬 편리했습니다.
걷다 보면 독립 서점, 공방, 한옥을 개조한 숙소들이 섞여 있는데, 관광지 냄새가 덜 나는 편입니다. 물론 주말에는 좁은 골목에 사람이 넘쳐나서 여유롭게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가보니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첨성대도 황남동 고분군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라 황리단길을 거점으로 잡으면 주요 명소를 걸어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대릉원 내부에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라는 구조의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적석목곽분이란 나무 관을 안에 두고 그 위에 돌을 쌓은 뒤 흙으로 덮는 신라 특유의 묘제 방식을 뜻합니다. 덕분에 도굴이 어려워 내부 유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경우가 많습니다. 천마총(天馬塚)은 이 구조를 내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왕릉 안으로 실제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궁과 월지, 낮이냐 밤이냐 굳이 고르라면
동궁과 월지는 과거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입니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문헌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라 시대의 기록과 동궁의 실제 기능을 반영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동궁(東宮)이란 왕세자가 거처하던 궁궐을 뜻하며, 월지(月池)는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의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낮과 밤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저는 해 질 무렵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조명이 막 켜지기 시작하면서 하늘빛과 연못의 반영이 동시에 살아있는 그 짧은 순간이, 완전한 낮이나 완전한 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습니다. 입구에 경관 조명 점등 시간이 표시되어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그보다 30분 정도 일찍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포토존에서는 연못에 비친 누각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데, 이 앵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었습니다. 다들 핸드폰을 들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또 하나의 풍경이 되더라고요. 야경 관람객이 많으니 조금 서둘러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첨성대에서 동궁과 월지로 이어지는 산책로 중간에는 꽃밭과 핑크 뮬리 단지가 있고, 신라 왕궁 유적지도 지나치게 되니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경주의 야간 관광 콘텐츠가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문화재청의 야간 개방 정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문화재 야간 개방 관련 정보는 문화재청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굿즈,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박물관이라고 하면 무조건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 케이스 안에 뭔가 놓여 있고, 설명 패널이 붙어 있고, 그냥 지나치는 공간. 그런데 이번에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계기는 조금 엉뚱한 데서 왔습니다.
K-컬처 열풍이 불면서 국내외에서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박물관 굿즈 상품이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손에 들어보니, 퀄리티가 생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그냥 복제품 느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쓸 수 있도록 유물의 문양과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굿즈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문양이 어느 유물에서 왔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전시실로 발길이 향하게 됩니다.
대표 전시 유물로는 금관(金冠), 얼굴무늬 수막새,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제작을 시작한 범종(梵鐘)으로, 범종이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에 사용하던 청동 종을 뜻합니다. 이 종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한국의 범종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국립경주박물관 공식 누리집). 굿즈에도 이 종의 비천상(飛天像) 문양이 자주 활용되는데, 비천상이란 하늘을 나는 천인(天人)을 형상화한 불교 미술의 장식 요소입니다.
박물관을 편하게 보고 싶다면 주말보다 평일 방문을 추천합니다.
경주는 어느 계절에 가도 볼거리가 있는 도시이지만, 가을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도 이번에 방문하면서 그 말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유적지를 '구경'하는 여행보다, 황리단길에서 하루를 보내고 동궁과 월지 야경으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리듬감을 넣어 계획하면 훨씬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처음 방문하는 분이라면 황리단길을 숙소 거점으로 잡고 도보로 연결되는 명소들부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f0Kbv-hTCg